[추천서적] 1만시간의 재발견
당신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읽어 보았다면 1만시간의 법칙을 알것이다.
어떤 분야이던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누구나 꾸준히만 노력해서 1만시간만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이 책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꾸준히만 하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사실 틀린 말이다. 올바른 연습을 충분한 기간에 걸쳐 수행해야 실력이 향상되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즉, 그냥 단순히 노력만 한다고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선까지는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게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려면 단순한 노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가 배우는 기술은 처음 일정부분 시간을 투여하면 성과가 나온다. 요리를 한다던지, 운전을 배운다던지, 홈페이지를 만드는 기술을 배운다던지.. 이런 것들은 일정시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단순히 요리를 오래했거나, 운전을 오래했거나 홈페이지를 오래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들 일류 요리사, 카레이서,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1만시간을 투자했으면 최고가 되어여 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일을 10년이상 해왔다고 해서 그 분야에 뛰어난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이해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운전, 테니스, 파이 굽기 등 무엇이 되었던 일단 여러분이 이처럼 ‘만족할 만한’ 수준, 기계적으로 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발전이 멈춘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한다. 지속적으로 운전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파이를 굽는 것이 일종의 연습이라고 보고, 그 일을 계속하면 나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속도는 느리겠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리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20년동안 운전을 한 사람이 5년 동안 한 사람보다 분명코 운전 실력이 나을 것이라고, 20년 동안 진로를 한 의사가 5년 동안 한 의사보다 분명코 실력있는 의사일 것이라고, 20년동안 교편을 잡은 선생이 5년 동안 잡은 선생보다 분명코 유능한 선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간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일단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실력과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처리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이후의 ‘연습’은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20년 동안 그 일에 종사한 운전자, 의사, 교사가 불과 5년 일한 이들과 비교해 차이가 있다면, 오히려 실력이 그보다 못할 가능성이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이런 기계적인 능력은 향상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경우에 서서히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단순히 1만시간을 기계적인 연습으로 채운다고 해서 뛰어난 결과에 다가가는 것인 아니다.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1만시간의 법칙을 단순화하는 것에 경고한다. 경력이 많다고 해서 뛰어난 것이 아니다. 시간에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의식적인 연습
이 중요하다. 즉 목적 의식 있는 연습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실수없이 적절한 속도로, 연달아 세 번 해당 곡을 연주하기” 이런 목표가 없으면 연습 시간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은 아기가 걸음마 하듯 작은 단계를 차곡차곡 더해서 장기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목표를 잘게 쪼개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핵심은 전반적인 목표(수행능력 향상)을 정하고, 그것을 다시 현실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매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로 바꾸는 것이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에는 집중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간만 채우는 것이 아닌 목표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익숙해지만 우리는 적당히 하게 된다. 일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거기서 발전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인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향상도 없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익숙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도전과 목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당히 시간만 맞추고 기계적인 행동이나 사고만 반복하면 일이 그냥 해결된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바로 자기가 뛰어나다는 생각.
이런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컴포트 존
에서 벗어나야 한다.
컴포트 존을 벗어난다는 것은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이떤 것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시도한 결과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비교적 쉽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속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장애물을 만나 멈출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도저히 극복하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장애물을 피해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목적의식 있는 연습’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의식적이 노력은 ‘더하기’ 가 아닌 ‘다르게 하기’이다. 잘못된 방법이나 방향으로 문제를 계속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서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은 단계적올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에 통해던 방법이 앞으로도 통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 필요한 방법은 각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비범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항상성이라는 편안한 틀 안에서 사는 데 만족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정신 활동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보고서 작성부터 운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부터 조직을 운영하는 일까지, 부동산 중개부터 뇌 수술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그럭저럭 해나갈 정도로 노력하지만, 무엇이든 일단 그런 단계에 도달하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수준 이상으로 해내려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렇다. 우리가 발전이 더딘 이유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다. 더 발전할 수 있는데 불구하고 컴포트 존에 머물면서 만족해한다. 거길 벗어나려면 무언가 도전과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시간만 흐르면 경험만 쌓으면 자신이 발전할 수 있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다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전통적인 방법은 항상성에 도전하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학습은 개인의 타고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며, 컴포트 존을 벗어날 만큼 강도를 높이지 않고도 특정 기술이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통 세가지의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첫째는 인간의 능력이 유전적으로 규정된 특성에 의해 제한된다는 오랜 믿음이다. 난 숫자에 약해, 나는 창의적이지 못해, 난 사람 관리하는 일을 못해, 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은 누구나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 두번째 잘못된 통념은 어떤 것을 충분히 열심히 하면 반드시 실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같은 일을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는 것은 실력을 향상시키는 처방이 아니다. 정체와 점진적인 쇠퇴로 가는 길일 뿐이다.
- 세번째는 노력만 있으면 실력이 향상된다는 생각이다. “충분히 열심히 하면 나아질 것이다”,”지금보다 나은 관리자가 되려면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팀워크를 항상시키고 싶다면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관리, 판매, 팀워크 등은 모두 전문적인 기술이며, 특정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맞추어 특별히 고안된 연습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연습’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누구든 발전할 수 있지만, 올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연습을 하는데 발전이 없다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전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 십중팔구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히 시간만 투자하는 노력은 결코 우리를 발전시킬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놀랍다. 책에서는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훈련 자체가 지식보다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그렇다. 어떤 특정한 기술을 책으로만 읽었다고 해서 그 기술이 내것이 되지 않는다. 요리책을 봤다고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그 지식을 행동으로 쌓아갈 때 비로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우리가 노력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그것을 경고한다. 우리가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행동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문제는 이러한 훈련(지식을 행동으로)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이 산만하거나 편안하게 즐긴다는 마음으로는 실력을 향상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다보면 늘겠지… “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지 않은가? 일정 수준은 늘 수 있다. 그러나 그 단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하나의 단계를 깨고 나가는 것은 편안하게 즐기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많은 고민과 정신적, 육체적인 고됨이 수반되어야만 비로서 그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자기 능력의 한계치까지 동원해야 한다면 온전한 집중력과 노력을 요구하는 법이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은 힘든 일이다. 우선은 계속하기가 어렵고, 설령 훈련을 계속한다고 해도(규칙적으로 헬스장에 가거나 매주 일정한 시간 기타 연습을 해도),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하기가 어렵고, 그렇다 보니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밀고 나가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발전도 멈춘다.
이쯤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보통 우리는 강력한 의지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주장한다.
오랫동안 강도 높은 훈련 일정을 지속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은 갖지 못한 남다른 의지력이나 ‘투지’, ‘악착같은 끈기’같은 드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류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배우는 A학생이 몇 개월만에 피아노를 그만두었지만 다른 B학생은 피아노를 꾸준히 연습해서 뛰어난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A학생이 의지력이 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A라는 학생이 피아노 대신 야구를 꾸준히 연습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면 그를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저자는 의지력이 문제가 아니라 동기부여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또한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는 오류도 경고한다.
어떤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기술을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이점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고, 결국 개인의 실력을 결정하는 데는 노력의 양과 질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의 IQ는 124였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월리엄 쇼클리는 125였다.
책에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해보자.
의식적인 연습(목적의식 있는 연습, 심적표상)을 하려면 자신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도록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고 집중해야 한다. 이는 몸과 마음을 기진맥진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어떤것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해서 의식적인 연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해보고, 실패하고, 계획을 변경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 과정이 끝나고 나면 목표 했던 기술의 효과적인 심적 표상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술과 관련된 다량의 정보 역시 흡수하게 된다.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기술이어야 한다. 호모 엑세르켄스 즉 연습하는 인간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