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와 두려움
세바시에서 의미있는 강연를 들었다.
세바시 568회 더 좋은 해답은 반드시 있다 | 신병철 스핑클 총괄대표 강연내용중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http://systematicrelativestrength.com/2013/11/12/your-plan-vs-reality/
정말 그렇지 않은가? 늘 우리가 짜는 계획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면 엄청난 장애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강연에 의하면 목표된 계획을 달성하는 확률은 10%미만이라고 한다. 그 10%와 나머지 90%의 차이는 바로 계획을 낙관적으만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의 사람들은 계획을 진행시 틀어질 수 있는 부분을 염두해두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되, 단기적으로 비관적으로 대처하라.
예전에 시크릿
이라는 책이 선풍적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핵심이다. 즉,내가 원하는 것을 쇼핑하듯이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듯 생각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노력은 안해도 된다. 오로지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그렇게 느끼라는 것이다. 만약 실패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고 어느 순간 의심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놀라운 설득력이었다. 한때 순진하게 그렇게 믿은 적도 있다.
그러다 자기계발의 덫 (미키 맥기)
라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 서적류의 민낯을 알게되었다.
별다른 노력없이 계획만으로 잘 될꺼야..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만약 안되면 어떻게 대처하지?’라는 두려운 질문이 우리의 최종목표에 좀 더 다가가게 해준다고 한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말이다.
무언가 도전을 하게 될때 가장 많이 보고 듣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그 만큼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제 아무리 잘 준비한 사람도 막상 도전의 순간이 오면 두려워하게 된다. 성공은 준비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준비와 노력을 하는 것은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함이다. 따라서 계획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도 우리는 실패의 두려움을 갖을 수 밖에 없다. 그 두려움이 우리를 보다 준비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두려워하라. 다만, 쫄아서 포기하지는 마라.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언가 준비하고 있거나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날고 있는 새는 두렵다. 먹이를 찾는 두려움, 천적을 만날 두려움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두려움은 도전과 함께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도전 중에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두렵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새장속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두려움을 애써 없애려고 하지 마라. 두려움은 없앨 수 없다. 누구도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두려움에 막혀 포기하는가, 아니면 계속 도전하는가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자주 겪을 수록 두려움에 대한 내성이 생겨 우리는 좀더 뻔뻔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속 도망쳐봤자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이 쫒아와 당신을 집어삼킨다. 스스로를 관 속에 집에 넣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아고 관속에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은 모두 똑같다. 죽으면 불에 타 재가 된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다. 즉, 마지막은 파멸과 절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패배자이다. 어떤 도전도, 결과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마지막은 실패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는 결과를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도전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그뿐이다. 도망치며 살 것인가. 불안이나 공포와 맞서며 살 것인가? 상처받는 것을 피하려고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계속 도망칠 수도 있고,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며 살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당신 자신의 몫이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도전할 수 있다. 결과는 실패라하더라도 도전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실패라는 결과에만 사로잡혀 살 것인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가능성이라는 과정을 음미하며 살아갈 것인가. 결국 인생은 결과에 의미가 있지 않다. 그 묘미는 과정에 있다. 도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면 인생이라는 과일을 맛보지 못한 채 썩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일은 어차피 썩게 마련이다. 그러니 썩기 전에 먹는 게 무슨 문제랴.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중에서 - 오카다 다카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