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보지 못하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있으니 돌아가세요.

예전에 본 영화인데 오랫만에 다시 보았다.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이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꽤 마음이 들었던 영화여서 다시 보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정말 하나도 촌스럽지가 않다. 역시 좋은 영화나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바래지 않는다.
유키구라모토의 로망스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그외 배경음악도 참 좋다.

가장 유명한 대사이자, 많이 패러디하는 부분은 아마 아래 화면일 것이다.

bittersweetlife

2005년 개봉당시 강사장(김영철역)이 왜 모욕감을 받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보스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자신의 애인을 선우(이병헌)가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극중에서 강사장은 자신의 젊은 애인(희수, 신민아)이 바람피는 것 같다고 선우에게 감시하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보고하라고 했다. 그런데 선우는 강사장의 젊은 애인이 또래의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바탕 두들겨 팬 다음, 고민 끝에 덮어주게 된다. 그리고 강사장한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이것을 알게된 강사장은 선우에게 처절하게 응징한다. 처음에는 죽이려고 했으나, 중간에 마음을 바꿔 가혹한 형벌을 준다. 선우는 마음의 바뀐 강사장의 기회보다는 처음부터 죽이려고 했던 것에 충격을 받고 결국 그의 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버린다. 두 사람의 마지막 조우에서 선우는 묻는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저 진짜 생각 많이 해봤는데, 저 정말 모르겠거든요? 말해봐요. 우리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거죠?
말해봐요. 저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습니까? 나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어요?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날! 말 좀 해봐요. 무슨말이든지 좀 해!”

그리고는 잠시 고민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총을 쏜다. 선우는 왜 강사장이 그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만약 한비자가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넌 역린을 건드렸어.”

한비자가 말한 역린이란 용에 턱아래 거슬러 난 비늘을 말한다. 사람이 용에 다른 곳을 만져도 괜찮은데 그 거꾸로 난 비늘(역린)을 건드리면 용의 노해서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한비자는 임금에게 역린이 있으니 절대 그부분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선우는 강사장의 어느 역린을 건드렸던 것일까? 강사장은 선우에게 가장 개인적인 업무를 맡긴다. 자기 젊은 애인을 감시하고 남자가 있다면 알아서 처리(보복)하고 직통전화로 보고하라고 했다.

극중에 선우는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선우는 강사장의 젊은 애인, 희수에게 감정을 품게 된다. 그래서 희수의 남자를 린치할때 그의 질투심도 폭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우는 결국 희수를 용서한다. 이것이 바로 선우의 실수이다.

강사장의 입장이 되어보자. 강사장은 이미 희수가 남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확신을 얻기 위해서 선우에게 일을 맡긴다. 선우가 만약 그 남자를 죽이거나, 보고하면 강사장의 선택의 길은 용서하거나, 끝장내거나를 결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선우가 용서하고 말았다. 선우가 용서한 것을 보스인 자신이 용서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한테 옹졸한 남자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용서하자니, 이미 선우가 용서한 후이기 때문에 자신의 용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강사장은 선우도 역시 희수를 좋아한 것을 알았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중, 한 명이 먼저 용서를 한 것이다. 강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저 무력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모른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강사장이 느낀 모욕감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친한 친구에게 비슷한 부탁을 받았다고 하자.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맞는가? 용서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물론 우연히 보게되거나 친구도 모른다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친구가 이미 의심하고 있다면 그것을 우리가, 아무런 권한도 없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상황을 결정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고자질쟁이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다른 사람의 결정을 우리가 대신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자의적인 결정이 상대에게는 모욕이 될 수 있다.

강사장도 자업자득이다. 강사장 스스로 말했듯이 그냥 한번 호통치면 그만인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

강사장도 역시 선우의 역린을 건드렸던 것이다.

선우의 7년간의 충성을 너무 쉽게 보았다. 그것은 강사장의 말처럼 그의 조바심에서 나온 실수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말야. 점점 인내심이 없어져..”

나이가 들면 실수나 실패에서 오는 상처가 생각보다 두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할 시간은 적어지고, 지키고 싶은 것은 많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바로 실수나 잘못된 판단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점점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역린은 비단, 임금이나 높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역린은 있다. 그것이 종교나 정치관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도덕적인 기준이나 사회적인 규범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역린을 건드리게 된다면, 선우의 마지막 중얼거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너무 가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