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오늘 미래를 만나다
오늘 미래를 만나다
는 2015년 신년특집으로 김정운 교수가 3부작에 걸쳐 강의한 내용이다. 예전에 굉장힌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나서 주말쯤 시간을 내어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명강의는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유트브에서 조회하면 바로 나온다)
중년의 나이를 보내다보니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답답한 것은 그 무언가의 정체를 전혀 알수 없을 때이다. 열심히 살아온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넘겨버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마음 한 켠에 진득하게 남아 있는 날이 많아진다. 무엇이 고갈되어선건지 아니면 정말 지천명의 나이를 향해 달려갈 때 나오는 자연스런 현상인지 모르겠다.
이럴때는 명강의와 명저를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싶어 여러 강의를 듣다고 결국 이 강의를 다시 듣게 되었다. 3부작에 거의 3시간정도 분량이지만 다시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감탄과 머리끄덕임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았다.
정리
여기서는 강의내용중에 재미는 빼고 나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부분만 발취헤서 그대로 기록하기로 한다. 아래 내용은 김정운 교수의 주장을 정리한 부분이다. 강의내용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앞으로 100세시대를 맞이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이다. 과거 50세가 평균수명인 시대에는 근면과 성실이 삶의 가장 큰 태도였다면 100세시대의 가치는 재미
와 창조적
이라는 것이다.
그럼 먼저 어떻게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창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적 즉 창의적이라는 것은 기존의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원하는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그래서 기존의 있는 것들을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는 편집과정이 바로 창조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금 현재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 자체를 문화/사회적 맥락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맥락도 스스로 만들어나가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맥락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는 창조적일 수 없다. 앞뒤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결코 창조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내 삶의 맥락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맥락이 남에게 지배되면 삶이 힘들어진다.
삶의 맥락을 바꾸려면 외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외로움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관계
속으로 도피한다. 또한 창의적인 삶을 위해선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태풍에 대나무가 견딜 수 있는 것은 마디
라는 쉼이 있기때문이다. 그러한 쉼이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서 삶의 맥락을 바꾸어어먄 비로소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결국 재미와 행복을 위해서 산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재미를 추구하면 죄의식을 느끼고, 행복을 만끽하면 불안감을 느낀다. 창조적인 삶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를 위해 노력하면 창조적이 된다. 그리고 100세 인생 시대애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바로 공부
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재미있다.
인간이 가장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때 나온다. 하지만 적당한 난이도와 성취가 있어야 비로소 몰입이 유지된다. 과제가 실력보다 높다면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과제가 실력보다 낮으면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이 중요하다.
계몽의 시대에는 보편적인 객관성을 시대의 기준 잣대로 여겼다면 현재는 바로 소통의 시대이다. 소통의 시대에는 객관성의 개념을 넘어선 상호주관적 개념의 시대이다. 상호주관적이란 각각의 주관성이 그대로 쌓아여 하나의 상호관계에 나오는 개념이다. 이러한 상호주관적의 핵심은 바로 같이 보기
이다.
같이 보기는 바로 시선의 공유이고 이것은 가치의 공유로 이어진다.
인간은 절대 논리적이지 않다. 논리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바보같은 생각이다.
바로 정서적공감이 대화앞에 있어야 한다. 공감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보의 빈틈이다. 이 정보의 빈틈은 상대에게 해석적 여지를 주어야 한다. 공감의 시대에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의 매력적이다. 즉 재미가 있는 사람이 소통에 능숙하다. 재미가 있는 사람이 설득이 잘된다.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스토리로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균 100세 시대에 사회적 가치는 바뀐다. 창조적 공부가 필요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행복은 바로 노년의 행복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창조적 공부가 필요하다. 창조적 공부란 내 방식대로 조합하는 방식이다. 내 주체적인 관심이 내 스토리에 저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스토리에 저장되는 데이터는 메타언어로 관리되어야 한다. 메타언어랑 대상을 한 차원 높에 설명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태그이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있어하는 공부를 하면서 데이터를 쌓아야 하고 이러한 테이터에 메타정보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이다. 자신의 실력은 곧 데이터베이스이다.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해야만 스토리가 나온다.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해지려면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그 데이터는 자신의 재미있어야 하는 데이터이다.
창조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은 조급함과 불안이다. 조급함은 전체를 보지 못한다. 불안하면 전체를 지각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현재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목표의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황적인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단, 나의 재미가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성찰하는 숙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재미는 아무도 관심없고 말초적인 신경만 자극하는 재미가 되어버린다.
재미와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오늘에 충실해라!
이것이 바로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