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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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에 의하면 도덕감정론이 일반인들이 읽기에 조금 난해하므로 조금 쉽게 풀이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도덕감정론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살아 생전에도 엄청난 존경을 받은 사람이있고 그가 왜 그렇게 존경을 받았지는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국부론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도덕감정론에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

공정한 관찰자란 인간의 상상 속 인물로, 스미스에 따라면 인간의 행동은 이 공정한 관찰자와이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확인해주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다. 즉,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지, 어떤 행동이 옳은지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이 인물과 얘기를 나눈다.

공정한 관찰자는 양심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고맙게도 스미스는 이 둘의 차이점을 천천히 알려준다. 양심은 각자의 가치관이나 종교 등의 원칙이 정한 기준에 어긋났을 때 자극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스미스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이보다는 어깨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인간 대 인간으로 나를 심판한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이 공정한 관찰자을 죽이면 안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기심과 욕심이 나를 흔들고 있는가? 우리는 어깨 너머로 우리를 응시하는 공정한 관찰자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스미스는 우리의 지나친 소유욕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로 유용하지도 않은 하찮은 것들에 돈을 써버리고 스스로를 파산시키고 있는가? 장난감 애호가들은 장난감의 효용이 아니라 장난감의 효용을 높이는 기계의 성능을 좋아할 뿐이다. 그들의 주머니는 작고 편리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이런 물건들을 더 많이 가지고 다니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옷에서는 찾기 힘든 새로운 주머니들까지 고안해낸다

최근에 단순하게 살자는 구호가 여기저기에 들린다.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면 삶에 있어서 정말 필요없는 물건들을 사는데 필요 이상의 신경과 돈을 들인다. 실제로는 활용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제품에도 단지 우리의 욕심을 채우고자 구매하는 경향이 많다. ‘좋아보여서, 이뻐서, 편리할 것 같아서’ 라는 그럴듯한 합리화를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과시하기 위해서 고가의 물건을 구매한다.

내가 본 광고 중에 최악의 광고는 친구들이 만났는데 서로 각자 가지고 있는 고가의 제품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승자는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이다. 또 어떤 광고는 ‘친구가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라는 말에 OOO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라는 역시 자동차 광고이다. 어떤 광고인이 기획한 것인지 모르지만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다. 브랜드 아파트에 고급 자동차가 그 사람의 삶을 고귀하고 존경스럽게 만든다는 물질 지상적인 사고방식을 자신의 아이에게도 가르치고 싶은 가치관인가? 친구 앞에서 고급자동차로 기죽이면 그렇게 기분이 째지는가? ‘차라리 열심히 성공을 위해 노력한 당신 자신에 대한 선물로 주세요’라는 취지가 더 경쾌하지 않을까?

저자가 들려주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기억하자.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외제차를 타고 고급 옷을 입고 다닌다고 고귀한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어느 빌딩주차관리인이 말하길 주차비 않주고 도망치는 차들 대부분이 외제차 소유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수도 있지만 도로에서 깜박이도 안키고 끼어드는 차 중에 외제가가 은근히 많다.
값비싼 소유가 값비싼 인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저런 속물근성을 버리는 데에 있다고 본다.
세상은 그래도 적어도 자신만은 그런 눈으로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책에 마지막 부분에 시스템에 관한 스미스의 의견도 인상깊다.

스미스가 가장 경멸한 사람은 ‘시스템에 갇힌 사람’이었다. 시스템에 갇힌 사람이란, 특정 설계나 비전에 따라 사회를 다시 세우려 하는 지도자를 뜻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기 위한 비전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그것이 이상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자신이 만든 비전에 파묻힌 그들은 그로인해 자칫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이나 계획의 실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 역시 보지 못한다. 시스템에 갇힌 몽상가는 그 일에 몰두해버린 채,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그 계획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이 도사린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미스에 따르면,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듯 사람들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체스의 규칙을 무시해버리곤 한다.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게임의 규칙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말의 이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여기저기에 말을 갖다 놓는다.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 인간 역시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회를 임의로 개조하려고 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때로는 간섭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절실한 충고이다. 또한 한 직장의 사람으로 나 자신도 반성한다. 조직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 구축일 것이다. 다른 말로는 프로세스일 것이다. 실수를 발견하거나 문제점을 발견하면 우리는 실세없이 더 옥죄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려고 한다. 적절한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시스템 만능주의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스미스는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도자, 리더가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으로 각종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다. 더 많은 규제와 더 많은 법으로 옥죄고 있다. 자율은 사라지고 규제만 남는 것이다. 물론 자율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규제와 지나친 절차에는 더 큰 단점이 숨어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교통규제중 눈이 띠는 부분이 있다는데 바로 유턴금지 부분이란다. 한국은 유턴허용 도로에서만 유턴이 가능하지만 미국은 유턴금지 구역을 제외하고는 허용이 된다고 한다. 비슷한 부분같지만 엄청 다르다는 것이다. 한 쪽은 이럴 때만 해라하고 규정하여 다른 시도를 억압하는데 다른 한 쪽은 이럴 때만 하지마라고 하여 여러가지 시도를 암묵적으로 장려한다는 것이다.
(출처 : http://estimastory.com/2015/10/18/istartups/)

절차와 프로세스와 같은 시스템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은 아니다. 거기에 자율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세상이 윤택해진다.

책을 덮으면서 애덤 스미스가 동양의 노자, 장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지혜로운 사람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