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 (고병권 저, 출판사: 돌배게)

불편한 책이다. 뭔가 힐링을 할 책을 찾던중 읽었는데,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저자의 깊이에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줄곳 말하는 부분이 얄팍한 도덕심을 갖춘 나로써는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저자는 노들장애인 야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장애인들에게 철학 교육이라..”이라는 편협한 의구심이 바로 떠올랐지만, 책을 관통하는 내내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아니 정확히는 나 자신의 좁은 인식을 정면으로 마주하게했다. 너무 익숙하고 편한 것을 통해 안주를 찾으려는 나에게 저자는 새로운 관점을 가르치게 했다. 물론 감히 저자의 생각에 다가갈 수 없지만 그래도 일말이나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상투적인 생각에 젖어 살아왔는지 알려준 책이다.

우리가 보통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얄팍한 인간성을 갖고 사는지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원주민 여성이 했다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현장인문학은 배움에 ‘함께’ 참여하는 공부법이지, 일방적으로 지식을 물품처럼 전달하는 공부법이 아니다.

누구라도 할수있는 말들의 향연에서 자신이 마치 굉장히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 옆에 서는 것이 바로 진정한 행동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사람에게 진정 박수를 보내야 한다.

책속에 일화중에 기초생활수급자가 해외여행을 하는 것에 대해 언론의 비판에 내용을 소개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감히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기초생활수급권이란 말 그대로 ‘권리’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감대에서 만든 ‘사회적 권리’다. 그가 그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준 돈을 밥 먹는 데만 쓰든, 책을 사보든, 여행을 하든, 자기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규정할지는 그 권리자가 정할 문제라는 말이다. 밥 먹지 않는 곳에 쓰면 ‘어, 먹고살 만한가 보지?’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먹는 동물’로서만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태도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기사를 보고 저자의 말대로 ‘어, 먹고살만한가 보지?’ 라는 생각을 한 사람이다. 돈 10만원을 쥐어지면 그돈으로 쌀을 사야하는데 만약 그 사람이 클래식 연주회를 갔다면 그것을 비난해야 하는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고 사는 것은 짐승과 같은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글을 읽으면서 무척 부끄러웠다. 우리는 우리가 베푼 선행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하고 그로 인해 우월감을 갖으려 한다.

철학자 니체는 선행을 통해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자들의 책략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선행을 베풀고 헌신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선행과 헌신으로 상대방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책이 내내 불편함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철학적인 저자의 사유에 대해 아주 공감가도록 이야기 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의 이야기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햇볕을 가리지 말라” 라고 말한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알렉산더의 대답도 잘 알려진 바이다. “내가 알렌산더가 안되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절대 권력자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라고 대답한 디오게네스의 대담함에 놀랐지만, 알렉산더의 대답도 바로 디오게네스를 완벽히 이해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원하는 것은 햇볕, 그것뿐”이라는 디오게네스의 답변은 황제 알렉산더를 떠받치고 있는 권력의 원천들을 단번에 부질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는 대단한 것들을 많이 가졌지만 ‘햇볕’처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햇볕은 황제가 오기 전에 디오게네스가 누렸던 것이지만 황제가 등장하면서 가려져버린 어떤 것이다. 누구나 누리고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황제는 줄수 없고 오히려 가리고 있는 것, 사람들이 황제를 두려워하거나 황제에게 기대를 걸면서(혹은 황제가 가진 권력과 부, 지식에 눈을빼앗기면서) 누릴 수 없게 된 것, 그것이 바로 ‘햇볕’이다.

과연 어떠한 사람이 절대권력과 절대부를 가진 사람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알렉산더의 대답도 멋지다. 절대 권력자가 되지 못할 바에는 그런 사람에게 굴복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과연 알렉산더의 대답이다.

과연 나는 언제쯤 “햇볕을 가리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욕심일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죠.” 그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걷고 있다.

그래 지금은 걸어가야 할 때이다. 언젠가는 나도 디오게네스처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